[생명과학논단] 먹는 물 안전도 검찰이 나선 뒤라야? / 김상종 교수
[한겨례 신문 2006년 12월 25일]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먹는 물 검사 결과 조작이 검찰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돈벌이 앞에서는 ‘먹는 것 갖고 장난치는 일’이 1410차례에 걸쳐 공무원과 대학과 민간업체에 의해 거리낌 없이 자행되었다. 기준치를 17배까지 초과한 물을 168개 학교와 19개 어린이집과 286개 마을과 489개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마셔왔다. 민간 기업과 대학과 공무원 사이에 돈 욕심으로 연결되어 기본적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벌어진 것이다.그러나 이런 비리는 복제약품이 오리지널 약품과 효과가 같은지를 평가하는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에서도 있었다. 명문 대학과 전직 식약청장이 운영하는 벤처기업이 결과를 조작하였다. 정부의 관리·감독 기능이 실종된 결과다. 건강한 삶의 기본인 먹거리와 의약품의 관리가 이 정도이니 ‘이 정부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세간의 평가에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씨제이(CJ) 급식사고를 계기로 검찰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을 확인해 낸 것으로 그나마 체면치레를 한 게 다행일 정도다.검찰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문제점에 대한 제도개선 방안 중에는 ‘먹는 물 기준에 노로바이러스 검사항목 신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개선안을 접하는 데 특별한 감회가 있다. 2000년 5월 서울시는 필자를 형사고발하였다. 1997년부터 서울시 수돗물이 여러 종류의 병원성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학술활동이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며 이로 인해 서울시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취지였다. 당시 환경부와 서울시는 우리의 검사방법에 트집을 잡았다. 필자가 수행한 검사방법 중 하나인 유전자검색법은 믿을 수 없으므로 서울시 수돗물은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4년 환경부는 현장점검을 통하여 서울시 정수장 7곳 중 3곳이 바이러스를 제거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하였다.결국 직접 여러 도시의 수돗물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한 뒤 문제점을 인정한 환경부가 공정시험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장염을 일으키는 150종의 바이러스 가운데 불과 몇 종류만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을 채택하였지 노로바이러스를 포함한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는 유전자검색법의 도입 요청은 거부하였다. 뿐만 아니라 먹는 물에서 바이러스를 직접 검사하지 않아도 되게 법을 만들어 정부는 수돗물을 정밀한 방법으로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제 검찰도 먹는 물에서 노로바이러스 검사를 요구하고 있어 유전자검색법을 도입하여 직접 검사해야 하는 환경부와 서울시로서는 곤혹스러울 것이다. 먹는 물을 통한 노로바이러스 집단감염 사고가 이미 두 차례나 질병관리본부에서 확인되었고 상수원이 노로바이러스에 광범위하게 오염되어 있는 상황에서 더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서울시가 필자를 형사고발할 당시의 서울시장은 현재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하나로 거론되는 고건 전 총리였다. 환경부를 대변하던 당시 곽결호 기획관리실장은 현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거쳐 전국에 수돗물을 파는 수자원공사의 사장을 맡고 있다. 당시 국회에서 수돗물의 문제점을 집중 추궁하던 김문수 의원은 현재 경기도 지사이고, 오세훈 의원은 서울시장이다. 당시의 주역들이 이제는 먹는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 이들이 전국적인 노로바이러스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지 지켜보자.이미 10년 전에도 마련할 수 있었던 제도적 장치를 연이은 집단 식중독 사고 이후 검찰이 나서야 갖추려 하고 있다. 이런 비효율적이고 비과학적인 나라에 사는 국민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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