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논단] 설득의 대화법 / 이현숙 교수
(매일경제 2006년 12월 19일)과학자들의 말투는 어떨까? 과학자들은 주로 분석적이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런지 간결하기보다는 서론이 긴 경향이 있다. 과학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고집이 세다는 점이다. 자연의 질서를 탐구하면서 동일한 연구 결과를 놓고 그 해석이 진화하는 것을 끊임없이 보아왔기에, 감히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 겸손함은 있다. 그러나 좌도 우도 아닌 분명하게 존재하는 자연의 규칙을 탐구한다는 자신감은 자기 세계가 분명하고 고집이 세게 만든다. 내가 봐도 분명 즐거운 대화 상대들은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학자들은, 적어도 나는, 남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린다. 오늘은 이런 나로 하여금 졸필 칼럼을 쓰게 만든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처음 필진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당연히 어떻게 하면 상대가 무안하지 않게 잘 거절할 수 있을까만 고민하였다. 그런데 결국 나는 내 뜻을 접고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을 하게 되었다. 나를 무릎 꿇게 한 것은 한 젊은 여기자의 특이한 화법이다. 강하고 똑 부러지는 언사, 간결한 문장, 상대를 뚫어보는 듯한 말씨.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기자들에 대한 인상이다. 그래서 기자를 만나면 불필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경계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내게 다가온 이 기자는 영 기자 같지가 않았다. "제가 잘 몰라서요…"로 시작하는 그의 말씨는 결정적 질문 한마디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기자들의 똑똑함과 달랐다. 하지만 이런 걸 따뜻한 카리스마라고 하던가? 나도 모르게 그의 충실한 인터뷰 상대가 되어버리는 경험을 여러 번 하였다. 그는 상대를 배려하면서 경계심을 허물어뜨린다. 이렇게 하여 그토록 겁을 내던 '나를 드러내는 작업'에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상대를 설득하는 협상 능력은 비즈니스맨이나 정치인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필요하다. 대학원 연구실을 운영하면서, 교수 사회에서, 심지어 가족간에도 필요하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은 과학자 사회에서도 학술 대회와 논문 기고시 빛을 발한다. 다른 사람이 내 의견에 동조하도록 끌어들이는 설득의 대화법은 어떤 것일까? 주장하고자 하는 논리에 빈틈이 없고 말이 유창한 사람도 있을 터이지만, 상대를 아끼고 배려하는 말씨는 결코 흔들릴 것 같지 않던 고집도 포기하게 만든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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