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논단] [객원논설위원칼럼] 김상종교수 / 미국서 1천만㎏ 환수한 미국 쇠고기
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한겨레신문 2007.10.8 기사]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다진 쇠고기’ 환수 조처를 지난 9월29일 농무부가 내렸다. 1천만㎏의 햄버거용 쇠고기를 환수시키는 이유는 미국 8개 주에서 32명이 이를 먹고 치명적인 대장균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환수조처가 내려진 지 엿새 만에 67년의 역사를 가진 뉴저지주의 육가공 회사는 결국 문을 닫았다.육가공 제품의 안전을 책임지는 미국 농무부는 이 환수조처 이후에도 미국 쇠고기 공급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며 농무부가 제구실을 잘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해자들과 소비자들의 생각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이번 사건의 원인균인 대장균 O157:H7은 사람의 신장·뇌·장세포에 결합하여 이들 세포를 죽이는 강력한 베로 독소를 분비하여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이 대장균에 오염된 시금치로 말미암아 26개 주에서 5명이 죽고 205명이 감염되는 사고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쇠고기에 의한 집단감염 사고가 일어나 소비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피해자들과 소비자들은 미국의 쇠고기 유통이 비위생적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농무부의 쇠고기 위생관리 시스템이 매우 허술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미 농무부의 늦장 환수조처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다. 환자와 햄버거용 쇠고기에서 동일한 종류의 대장균을 확인하고도 11일이나 지나서야 환수조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또한 농무부는 다른 육가공 공장에서 하듯 사고를 일으킨 공장에도 정기적으로 감독관을 파견하였지만 이 회사가 오랜 기간 중요한 위생안전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난 1년 동안 생산된 전 제품을 환수하게 되었다. 미 농무부는 쇠고기 관리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신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이 사건으로 시끄러운 사이 지난 6일에는 카길이 38만㎏의 햄버거용 냉동 쇠고기를 환수한다는 새로운 조처를 발표하였다.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상세히 소개하는 까닭은 남의 일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등뼈가 지난 8월에 이어 또 발견되었다. 단순한 뼛조각이 아닌 ‘광우병 위험물질’이 발견된 만큼 정부가 정한 방침대로 새로운 위생검역 조건이 발효될 때까지 수입 검역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이후 이런 문제가 되풀이될 때마다 미 농무부는 단순한 실수라고 변명하는 한편 오히려 우리 정부에 갈비나 뼈까지도 완전 개방하라고 윽박질러 왔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집단감염 사고와 연이은 대규모 환수조처에서 확인하듯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미 농무부의 쇠고기 위생관리체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소송 천국이라는 자국의 국민들에게 공급하는 쇠고기의 위생관리에도 실패한 미 농무부가, 안하무인으로 여기는 나라 사람들이 먹을 쇠고기를 더 철저히 관리할 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광우병 위험물질이 또 검출되어 수입검역을 중단시킨 지금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생안전 문제에 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할 절호의 기회이다.그러나 우리 정부가 문제다.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며 국민의 건강을 위한 공세를 취해야 할 때 오히려 갈비마저 수입하겠다고 먼저 알아서 바치는 정신 나간 노릇을 하고 있다. 라면 수프나 구내식당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은 서민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자신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12월 대선 전까지 잘 골라내는 것과 같은 자구책 마련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