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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논단] [사이언스 에세이] 이현숙교수 -시인의 경지에 이른 과학자

2009-07-27l 조회수 6113

[한국일보 사이언스 에세이 / 7월 27일] 이현숙 교수 -시인의 경지에 이른 과학자 글을 잘 쓰는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 있다. 루이스 토마스 상이다. 1993년 미국 록펠러대학이 제정한 이 상은 과학과 과학의 철학을 더 넓은 사회에 솜씨있게 전달한 저서의 저자에게 수여된다. 선정위원회는 과학을 인문학과 연결한 아주 드문 사람들을 발굴하여 수상자로 선정하며, 이들에게 시인의 경지에 이른 과학자(Scientist as poet)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수여한다. 지금까지 15명의 수상자 중에 노벨상 수상자는 넷이다.필자를 포함해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보통 글재주가 없다. 전공지식과 실험에 바빠 글쓰기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탓이다. 글 잘 쓰는 인문학자들 경우는 과학 지식이 매우 얕다. 이런 상태에서 과학의 대중화는 요원하다.우리 글로 출판된 과학저서 중 세계적 평가를 받는 책은 거의 없다. 고교부터 문·이과 분리교육이 심화되면서 과학자들은 글을 잘 못쓰고 인문학자들은 과학의 성과를 제대로 인용하지 못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천재를 예로 들지 않아도 서구 르네상스인들과 후예들은 철학, 과학, 글쓰기가 하나였다. 다윈이 인문학과 종교, 과학을 함께 공부하지 않았다면 <종의 기원>은 탄생하지 못했다.학문이란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사유하며 나의 뜻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작업이다. 탁월한 과학적 성과가 성공의 반이라면 실험 결과와 사유의 결과를 글로 잘 표현하여 응당한 평가를 받는 것이 그 나머지 반이라고 유학시절 필자의 지도교수가 말했다. 논문을 쓸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지도교수의 말이 백 번 옳음을 절절히 느낀 게 한 두 번이 아니다.우리의 영어 교육을 돌아보자. 회화 위주의 교육 앞에 정작 전문가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학술적 글쓰기 교육은 뒷전이다. 내기를 걸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으로는 우리가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없다. 인구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길은 과학, 문화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루이스 토마스 상의 이념을 되새겨 우리 글로 과학과 인문학이 소통하는 전문적 작업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양성돼야 한다.저명한 과학자 스스로 이 일에 동참하여야 하고 기자와 번역가 등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것이 과학문화 강국이 되는 지름길이다. 영어 교육도 맥을 같이 할 필요가 있다. 탁월한 성과에 문학적 상상력이 가미된 좋은 논문은 유명 학술지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이다. 유치하지만 노벨 과학상을 받기 위해서도 탄탄한 글쓰기 교육은 중요한 것이다.대학교육에서 학술적 글쓰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대학들이 세계 정상의 대학으로 발전하려면 지식을 창조하고 꽃피우는 일을 주기능으로 삼아야 하며 그 중심에 학술적 글쓰기가 있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다. 그런데 대학 졸업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자, 변호사, 의사, 금융인, 공무원, 정치인 등도 결국 글쓰기로 먹고 사는 직업인 것을 생각하면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학술적 글쓰기 훈련은 절실하다.늦었지만 서울대는 2009년 창조적 미래지도자 육성을 위한 교육역량 강화사업에서 학술적 글쓰기를 역점사업으로 편성했다. 이 사업이 지속적으로 운영되어 10~20년 후 결실을 맺고 학문과 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