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논단] [사이언스 에세이] 이현숙교수 - 세포에서 배우는 사회학
[사이언스 에세이] 세포에서 배우는 사회학 누구나 자신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 대학에서 세포에 대해 가르치는 필자는 자주 세포를 통해 인간사를 볼 때가 많다. 살아있는 세포는 역동적이다.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세포 분자들의 움직임을 나노 테크놀로지와 고해상도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아무것도 가만히 있는 것은 없었다.DNA, RNA 핵산 물질도 생명 현상을 직접 수행하는 단백질들도 계속 다른 누구와 관계를 맺고, 태어난 다음에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성숙한 후 자신이 가야 할 주소로 이동하여 세포가 받아들이는 신호체계의 명령대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한다. 신호전달의 과정은 매우 정교하지만, 하지만 항상 실수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그 에러를 고치는 다른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틀림이 없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포의 항상성이 유지되고 우리 몸은 무병 상태를 유지한다.정상 세포가 암세포가 되는 기제를 규명하는 것이 필자의 연구 주제이다. 이 중, 특별히 세포분열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에 천착하고 있다. 세포의 증식은 한 개의 어미세포가 DNA 유전정보를 복제 후 두 개의 똑같은 딸세포로 분열하는 과정이다. 에러 없이 똑같은 유전 정보가 딸세포에 전달되는 유전적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암이 생긴다.암이란 놈이 본래 계속 유전정보의 불안정성 위에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는 지독한 놈이기 때문이다. 종족 보존을 위해서도,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위해서도 유전정보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약간의 돌연변이는 진화의 원동력, 세포의 역동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말이다.따라서 분열하는 세포는 어떤 공격에도 유전정보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세포 주기 체크포인트가 바로 그것이다. 세포 주기 체크포인트는 진화의 단계가 높은 생명체에서 그렇지 않은 생명체보다 더 정교하게 발달되었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체크포인트가 발달한 세포가 그렇지 않은 세포보다 다양성을 가지면서 진화하는 데 유리했던 모양이다.체크포인트는 검역소이다. 유전정보를 위협할 어떤 요소가 발생하면 체크포인트가 활성화되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번다. 이 시간은 20배, 30배까지 길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세포는 죽음을 택한다.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듯 언젠가 죽게끔 프로그램 되어 있다는 뜻을 가지는 apoptosis 말이다. 체크포인트도 망가지고 죽지도 않는다면 후속 세포들은 돌연변이가 축적되면서 암세포가 되기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진화가 많이 된 세포들이 체크포인트가 발달했듯, 선진 사회일수록 시스템에 체크포인트를 많이 두고 있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죽거나 암세포로 되기 전에 고치고 넘어가는 게 현명하기 때문이리라.세포분열의 과정은 다양한 음악가들이 구성하는 오케스트라에 비유된다. 세포에서 단원들은 지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신의 임무를 다한다.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지휘자를 무시하거나 지휘자가 단원들을 함부로 하면 음악이 만들어지지 않듯, 세포의 항상성은 보장되지 않고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마련이다.요즘 들어 자꾸 세포라는 창을 통해 사회를 보게 된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평화와 복지(세포의 항상성)를 진두지휘하는 지휘자, 제1바이올린이다. 오케스트라는 국민이다. 지식인들과 인권, 시민 운동가들, 노동조합, 국회의 야당 등은 체크포인트가 아닐까. 지휘자가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위험하다고 시간을 두고 고치고 넘어가자는 체크포인트의 신호를 무시한다면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지지 않듯 우리 사회의 안녕은 없다. 세포라면, 죽거나 암에 걸린다.< 한국일보. 2009.08.24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