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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매경이 만난 사람] 美 보스턴서 안식년 보내는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2011-08-29l 조회수 5450

[매경이 만난 사람]
美 보스턴서 안식년 보내는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42)는 `스타` 라는 수식어가 붙는 몇 안 되는 국내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연구 분야인 `마이크로RNA`는 몰라도 `빛내리`라는 이름을 아는 일반인이 제법 흔하다. 10년 전만 해도 그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계약직 교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름을 지어준 부친의 바람대로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역사상 첫 `노벨과학상`을 탈 만한 과학자 1순위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대표 과학자로 우뚝 선 것이다.

그는 끝없는 실험 끝에 성장과 노화 등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유전물질인 마이크로RNA의 생성 과정을 밝혀 세계적 권위자 반열에 올라섰다. 40대 초반에 서울대 석좌교수가 됐고 8명뿐인 국가과학자에 선정됐다. 올해 들어 7개월간 미국 보스턴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그를 최근 한ㆍ미과학기술학술대회(UKC)가 열린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만났다. 놀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미국에 머물던 지난 7월에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한 김 교수는 다음달 학기 시작에 맞춰 서울대로 복귀한다.그는 노벨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데 대해 "조금 거북하다. 열심히 하고 있고, 열심히 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고 했다.

-노벨과학상을 받을 수 있을까.

▶RNA간섭현상에서 생리의학상(2006년)이 나왔다. 비슷한 연구를 한 사람에게는 노벨상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진행한 연구로 (상을)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간 연구한 것도 중요하고 가치가 있지만 새로운 분야로 나가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엇이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가 될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중요한)발견이 이뤄진다. 어떤 노벨상 수상자에게 `무엇을 하면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그걸 알면 내가 (그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들조차 어떤 것이 수상 분야가 될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생물학은 눈앞에 보이는 걸 열심히 해야 결론에 도달하더라. 큰 그림에서 무엇을 풀어야 한다고 해서 성공하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마이크로RNA를 연구한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

-과학자로서 풀려고 하는 핵심 과제는.

▶큰 질문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노화 문제다. 노화가 어떤 원인으로 나타나는지, 노화를 일으키는 유전 조절기제를 찾아 조절할 수 있을지, 그게 가능하다면 수명 연장이 가능할 것인지 등이다. 이건 풀어내면 안 될 문제일 수도 있지만 매우 중요하다. 또 하나는 인간의 인지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아내고 그 과정을 조절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노화문제는 RNA와 어떤 관련이 있나.

▶생물학적으로 최근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들은 세포의 기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줄기세포가 세포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에 관련된 문제다. 그 과정에서 RNA들이 각광받고 있다. 마이크로RNA를 이용해 줄기세포를 만들거나 세포를 분화시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평생 연구목표로 삼는 것은.

▶인간 유전체 중 우리가 이해하는 부분은 매우 적다. 유전체 중 2%만 알고, 나머지 98%는 모른다. 숨겨진 98%의 절반 이상에서 RNA가 만들어진다. 말하자면 단백질을 만드는 RNA보다 못 만드는 RNA가 더 많다. 단백질이 세포기능을 조절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단백질을 못 만드는 RNA(noncoding RNAㆍncRNA)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연구해온 마이크로RNA도 ncRNA의 일종이고, 마이크로RNA 이외에도 수많은 ncRNA가 존재한다고 예상된다. 아직 얼마나 많은 ncRNA가 존재하는지, 기능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불분명하다. 도전해보고 싶은 주제다. 밝혀지지 않은 물질을 찾고 질병과의 연관성을 밝히는 연구 분야는 크게 성장할 것이다.

-연구년은 어디에서 보냈나.

▶생명과학ㆍ의학이 유명한 MIT 화이트헤드연구소에서 7개월을 보냈다. 이미 우리 랩(서울대 연구실)에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하기 때문에 어딜 가서 배워야 하는 건 많지 않다. 생명과학 중심지인 보스턴에서 크게 성장하는 연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글도 많이 읽었다. MIT 박사과정 학위논문심사에 심사위원으로 두 차례 참석해서 배운 게 있다. MIT 교수 3명이 심사를 했는데 노벨상 수상자인 필립 샤프 교수와 줄기세포 전문가인 루돌프 야니시 교수 등이 세심하게 준비를 해와 질문을 하더라. 대가들이 성실하게 임하는 모습을 보고 교육자로서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보스턴과 서울의 과학을 비교하면.

▶지난해 네이처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보스턴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구 성과가 나오는 도시로 집계됐다. MIT 전체와 하버드대 일부가 소재한 케임브리지를 제외하고 집계한 결과이니, 보스턴이 과학계에서 얼마나 선도적 위치에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여러 우수 대학이 생겨나고, 연구실 수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설비를 이용할 수 있는 등 인프라스트럭처가 잘 갖춰졌다. 학자들의 인적 교류가 활발해 정보 유통도 빠르다. 기업들이 들어서면서 대학과 기업의 교류도 활발하다.

서울은 여전히 세계 과학계의 변방이다. 한국 연구자를 모두 합쳐도 보스턴 지역의 연구자 수에 미치지 못한다. 다만 보스턴도 100년 전까지는 세계 과학계의 변방이었다. 급격히 발전하는 동북아시아에서 한국 도시가 새로운 과학 중심지로 성장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초ㆍ중ㆍ고 교육 환경을 잘 갖춰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 과학자든 자식 교육을 희생해가며 연구하지는 않는다.

-연구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때는.

▶제일 자랑스러운 게 처음 책임저자로 쓴 논문이다. 마이크로RNA가 어떻게 생성되는지 가설을 처음 세웠던 논문인데, 혼자만의 아이디어로 독자적으로 실험해 썼다. `사이언스`에서 일주일 만에 리젝트됐지만 `엠보(EMBO)` 저널에 나왔다. 이쪽 분야에선 중요한 논문이 됐다.

-과학자(연구자)의 매력은.

▶연구자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물론 놀라고 해도 못 노는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긴 하지만(웃음). 하고 싶은 취미를 평생하고 월급까지 받을 수 있는 아주 사치스러운 직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만족도는 엄청나게 높다. 10년간 워낙 바빠서 연구 외에 다른 일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요즘 아이들을 수영장에 데리고 가거나 테니스를 했다.

-미국에서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냈나.

▶원래 놀려고 해도 잘 못 노는 스타일이다. 가족을 위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많았는데 여행을 자주 가지 못했다. 워싱턴과 뉴욕에 한 번씩 다녀왔다. 많이 다녀야 하는데 애들이 엄마를 잘못 만났다. 열두 살짜리 큰애는 괜찮은데 여덟 살짜리 둘째는 오늘도 아침에 (엄마를)붙잡기에 안아주고 나왔다. 남편은 검사인데 하버드대 방문연구원(visiting scholar)으로 왔다. 오기 전 총리실에서 법률자문을 맡았다. 미국에서 살림은 남편이 더 많이 했다. 검사들도 요즘 술을 많이 안 마신다. 바람직한 것 같다(웃음).

-학창 시절 진로에 대한 고민은.

▶88학번인데 고등학교 다닐 때 과학고는 없었다. 과학교육을 참 빈약하게 받고 자란 세대다. 과학실에 제대로 된 실험기구도 없었다. 과학사 책을 읽다가 재미있어서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생물학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물리학을 좋아했지만 물리학은 아주 뛰어나게 잘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들었다. 생물학은 여학생들이 많이 가기도 했고, 뛰어난 여성 생물학자도 보여 성공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박사학위 받은 뒤 그만둘 생각도 했었다. 아주 잘하는 여자 선배들도 직장을 얻지 못해 연구를 못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연구자로 성공할 자신이 없더라. 너무 자신 없어 하자 남편이 사법시험 준비하는 건 어떠냐고 권했다. 그래서 사법시험 준비를 일주일 했다. 민법책을 봤는데 너무 재미가 없더라(웃음). 연구실로 돌아가 빨리 피펫 잡고 실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후 가족들 지원 덕에 미국 유펜(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2년 공부(박사후 연구원)하고 돌아왔다.

-어디에 재능이 있는가. 부족한 점은.

▶무엇이 중요한지 쉽게 빨리 보는 편이다. 중요한 문제를 파악하면 그걸 풀어내는 건 덜 어렵다. 대인관계에서는 무지 느리다. 사회가 점점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데 그게 안 돼서 고달프다. 가족들도 피해를 많이 본다(웃음). 과학자는 연구자로서뿐만 아니라 경영자 측면도 있는데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반면 언어 소통능력과 언어감각은 보충했으면 좋겠다. 책은 많이 봤지만 외국 연구자들과 비교해보면 프레젠테이션이나 토론훈련이 너무 안 돼 있다. 또 운동신경이 너무 없다. 중ㆍ고등학교 때 달리기는 항상 꼴찌였다. 100m달리기 기록이 20초를 넘었다.

◆`국가과학자` 김빛내리 교수는

김빛내리 교수는 인간의 생명현상을 연구한다. 생명이 생겨나는 제일 처음 지점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 구성물질들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밝히는 일이다.

이 생명현상의 중심에 DNA(디옥시리보핵산)와 RNA(리보핵산)가 존재한다. 인간의 세포핵 안에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이다. 핵 안에 든 DNA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는 핵 밖에 있는 단백질 공장(리보솜)으로 DNA의 유전정보를 전달해주는 배달부가 필요하다. 이를 메신저 RNA(mRNA)가 맡는다. 김 교수가 연구하는 마이크로RNA(micro RNA)는 이 배달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22nt(뉴클레오티드) 길이의 아주 작은 꼬마 RNA다. 꼬마 RNA는 메신저RNA와 결합해 단백질 합성을 조절한다. 세포가 분열하거나 사멸하고, 암이 생기는 과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물 세포에 존재할 것`이라고만 막연하게 알려졌던 마이크로RNA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이후 활발하게 전개됐다. 김 교수는 그 한가운데에 있다.

그는 2002년 이 마이크로RNA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밝힌 논문을 유럽 분자생물학 저널인 `엠보(EMBO)`에 실어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 생물학자들은 DNA와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후 수십 년간 단백질 연구를 했지만, 지금까지 전체 유전물질의 2%에 대한 유전정보만을 얻었다.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며 `쓰레기(junk)`로 무시했던 나머지 98%의 다른 물질들이 생명현상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김 교수는 마이크로RNA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질병을 연구하면서 마이크로RNA를 활용해 유전자를 조절하는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김 교수 연구실의 허인화 박사, 대학원생 박종은 씨가 마이크로RNA가 생겨날 때 다이서(Dicer)라는 효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밝혔다. 길게 한 가닥으로 연결된 염기를 가위 역할을 하는 효소가 정확한 위치를 찾아 잘라 마이크로RNA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만약 이 효소가 망가져 정확한 위치를 자르지 못하면 마이크로RNA는 기형이 된다. 이상이 생긴 마이크로RNA는 암이나 당뇨 등 각종 질환을 일으킨다.

김 교수는 "세포 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RNA간섭기술의 토대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RNA간섭은 마이크로RNA가 메신저RNA 등과 결합해 유전자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단백질을 통제하는 것을 뜻한다. RNA간섭기술은 마이크로RNA를 모방한 RNA를 세포에 집어넣어 세포 유전자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다. 사람과 동물의 RNA를 조작해 원치 않는 단백질이나 잘못된 단백질의 양을 줄이면 난치병 치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 She is…

△1992년 서울대 미생물학 학사 △1994년 서울대 미생물학 석사 △1998년 옥스퍼드대 생화학과 박사 △1999~2001년 하워드휴스 의학연구소, 펜실베이니아대 박사후과정 연구원 △2001~2004년 서울대 연구교수 △2004~2008년 서울대 조교수 △2008년~현재 서울대 부교수 △2009년 호암상 의학부문 수상 △2010년 국가과학자에 선정 △2010년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 대상 △2010년 2월~ 과학저널 셀(cell) 편집위원 △2010년~현재 서울대 중견석좌교수

매일경제 2011.08.26 기사(링크)